한국을 다녀온 교민이라면 누구나 하는 말이 있습니다. “커피 맛이 왜 그 모양이냐?”는 것인데, 입맛 까다롭기가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한국 사람들이 어째서 커피 맛이 그 지경인데도 아무 불평이 없을까? 하고 의아해 합니다. 그러면서 “맛대가리 없는 커피가 값은 또 ‘우라지게’ 비싸다”는 말을 반드시 덧붙입니다. 하기사 저도 ‘한국의 커피’에 그 사람들처럼 똑 같이 세 번 놀랐습니다. 첫째는 저 역시도 너무나 비싼 값에, 둘째는 형편없는 커피 맛에, 세 번 째는 그럼에도 전혀 타박을 않는 한국인들의 너그러움에 놀랐던 것이죠. 아
저는 요즘 ‘하나를 사면 갖고 있던 것 중에서 하나나 둘은 버린다’는 원칙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그런 식으로 더 이상 소유물을 늘리지 않을 방도를 일단 세운 다음에 차츰차츰 소유욕 자체를 꺾겠다는 것이 저의 여생의 전략입니다. 그리하여 바라옵기는 지난 2008년에 타계한 박경리 선생의 유고시집 가 죽음 앞에서 나의 묘비명이 될 수 있기를! 물론 박 작가가 말한 ‘버리고 갈 것’이 물질만을 뜻하지 않는다는 건 압니다. 그러나 무엇을 버렸건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이라는 그의
두 달 가까이 시드니에 머물다 서울에 돌아온 지 꼭 한 달째 입니다. 20년을 넘게 살던 곳을 3년 만에 찾았지만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번 방문에서는 물질이나 외형적 탈바꿈보다 인간 내면을 돌보는 섬세하고 배려 깊은 변화가 눈에 띄었습니다. 그 가운데 두 가지만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시드니의 열차는 맨 앞 뒤 칸과 가운데 칸을 콰이어트 캐리지(quiet carriage)로 지정하고 있었습니다. 이 칸의 승객들은 핸드폰 사용과 음악 듣기, 동행과 대화 나누기 등을 제한 받게 됩니다. 핸드폰 신호음은 묵음으로 하되 급하
며칠 전 휴대전화기에 이상이 생겨 근처 대리점을 찾았습니다. 마침 할아버지 한 분이 최신 스마트 폰을 개통하고 계셨습니다. 할아버지는 마치 비싼 장난감을 갖게 된 어린아이처럼 들떠서 이런저런 질문을 하십니다. 개통이 완료되자 직원 하나가 할아버지 곁에 붙어 앉습니다. “단단히 일러줘야 혀. 한 두 번 가르쳐 줘서 알아먹을 것 같지 않응게.”막상 스마트 폰을 손에 쥐자 할아버지의 태도가 결연해집니다. 아니나다를까 할아버지는 걸려오는 전화를 받는 것에서부터 막힙니다. 카카오톡 사용법 설명으로 넘어가니 알겠다며 건성 대답을 하십니다. 일
혼자 사니 밥도 주로 혼자 먹습니다. 식당에서 혼자 ‘늠름하게’ 밥을 시켜 먹는 일에도 이제는 익숙해졌습니다. 하지만 고깃집에 혼자 갈 생각은 아직 안 해봅니다. 혼자 불판을 껴안고 궁상을 떠는 꼴 만큼은 남에게 보이기 싫어서인지, 아니면 1인분을 시키려니 주인의 눈치가 보여서인지(팔지 안 팔지도 모르지만)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다 최근에, 역시나 혼자 사는 선배 하나가 어느 날 하도 고기가 먹고 싶어서 ‘보무도 당당히’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가 삼겹살을 시켜먹었다는 말을 듣고 저도 ‘용기’를 냈습니다. 한국에서의 일입니다. 며
3년 전 제가 혼자된 처지로 한국에 돌아갔을 때 지인들은 각자의 ‘방서’를 제게 권했습니다. 구태여 이름을 붙이자면 ‘독거 중년 레시피’라고 할까요?^^ 그중에는 ‘치즈, 바나나, 초콜릿’을 상비하라는 아주 구체적인 ‘약방문’을 주신 분도 있었습니다. 저를 진심으로 아끼고 본인 또한 가족 간의 별리의 아픔을 겪은 분이라 충고를 귓등으로 흘리지 않았기에 지금껏 제가 기억하고 있을 테지요. 독수공방의 설움을 야식으로 달래라는 단순한 뜻이었다면 ‘배달의 민족, 야식공화국’에서 치즈, 바나나, 초콜릿은 아무래도 좀 궁색스럽습니다. 그분이
요즘 한국 여대생들이 가장 선망하는 것은 ‘재벌 세컨드의 딸’이 되는 것이라 합니다. 원래는 재벌 2세가 되는 꿈을 가졌으나 아버지가 재벌이 될 가망이 없자 그 꿈을 물리고 이번에는 엄마에게 기대를 걸어 보게 되었답니다. 그러면서 이 꿈이 왜 딸들만의 꿈이냐면 아들은 경영권 다툼에 놓이거나, 본인은 원치 않는데도 경영 전선에서 뛰느라 골이 아플 수도 있기 때문이랍니다. 하지만 딸은 오직 돈을 물 쓰듯 하면서 갖고 싶은 걸 다 가질 수 있는 ‘옹주’의 신분을 즐기기만 하면 되니 이 땅에 여자로 태어나, 혹은 태어날 운명치고 이보다 더
집필과 출간, 강연 등으로 한국에서 활동 중인 신아연 작가가 최근 인문 에세이집 를 내고 3년만에 시드니를 찾았습니다. 호주 한인 사회의 오랜 벗인 신 작가는 그간의 격조했던 교민들과의 시간을 '신아연의 인문 에세이'를 통해 메우겠다고 합니다. 평범한 일상의 경험을 통찰력 깊은 인문적 사유로 녹여내는 신아연 작가의 글에 한호일보 애독자들의 공감과 사랑을 기대합니다. - 편집자 주(註) 지인들과 만나 담소하는 중에 돈 많은 사람들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우리나라 물질 소유 서열 상위 10%가 국민 전체